F.A.

3 Dots 

▪ 세대론은 개인의 다층성을 일반화할 위험이 있음에도 특정 개인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어줄 수 있단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세대론에 따른 콘텐츠 소비 분석은 특정인, 특정 세대의 욕망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분석 가치가 있다. 

▪ 한국콘텐츠진흥원이 Z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Z세대는 맥락이나 개연성보다 재미를 가장 우선시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를 중시해 빨리 감기와 멀티태스킹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 이러한 세태로 인해 기성세대 및 언론은 서사의 위기를 염려하나 Z세대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접한 해외 콘텐츠에 열려있으며 일률적인 할리우드 내러티브보다 다양하고 진정성 있는 서사를 추구한다.

 


 

한창 MZ세대 담론이 터져 나올 때 이런 비판이 있었다. 과연 밀레니얼과 Z세대를 하나의 범주로 묶어 일반화하는 게 타당한가. 1981년부터 2010년대 초반 출생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MZ세대의 기준이 정립되기는 했으나 각종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MZ세대 용어는 기성세대의 질서를 따르지 않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이자 문제의식을 지칭하는 일종의 밈으로 더 자주 사용된다. 앞선 비판에 답하자면 밀레니얼과 Z세대를 하나의 범주로 묶는 것과 이 둘이 얼마나 세대적으로 다른지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 이유는 세대란 개념 자체가 한 개인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포괄할 수 없으며 같은 세대 내에서도 계층, 교육 수준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기에 하나의 세대론으로 묶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알고리즘과 구독형 콘텐츠의 소비는 개인을 동질성이 아닌 이질성의 시대로 추동했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졸데 카림(Isolde Charim)이 2019년에 펴낸 예리한 정치철학 에세이 <나와 타자들>에서 단정적으로 선언했듯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동질성의 세계에 살지 않는다. 동질 사회는 지난 20~30년 동안 천천히 사라졌다.” 그는 이를 이민자가 어느 축구팀을 응원하냐는 질문을 받는 상황을 제시하며 논증한다.

 

유럽에 온 이민자들은 으레 축구 경기 때 어느 팀을 응원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이를 통해 통합의 정도를 측정하려고 하지만 이 질문은 지금의 변화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 터키계 이민자가 독일을 응원한다고 해서 그가 완전한 독일 정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터키를 응원한다고 해서 완전한 터키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민족 정체성은 다원화되었다. 시민들은 이제 완전하지 않은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 이졸데 카림(Isolde Charim)

 

이는 세대론에도 얼마든지 적용 가능한 이야기다. 같은 세대에 속한다고 해서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는다. 세대 정체성 역시 다원화되었다. 개인을 구성하는 다양한 정체성은 마치 기체처럼 휘발되거나 액체처럼 흘러 변화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한 개인이 자신을 표현하고자 스스로를 MZ라 지칭해도 이 또한 고정된 게 아니라 언제든지 폐기되거나 거부당할 수 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대론은 왜 필요할까? 불완전한 이론이라 하더라도 고정된 용어만이 줄 수 있는 해석의 안정성 때문 아닐까? 만약 MZ세대를 규정하고 이들의 특성을 도출하려는 여러 연구와 담론이 없다면 역설적으로 MZ세대로 호명되는 개인들을 이해할 단초를 찾기 어렵다. 모든 개인을 설명하는 완벽한 이론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젊은 세대가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 어떤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의 근거가 마련될 수 있다. 그렇다면 MZ세대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다음 세대로 지목되는 Z세대는 어떤 심리와 욕망으로 요즘의 콘텐츠를 소비하고 이용하고 있을까?

철학자 이졸데 카림의 <나와 타자들> 표지 Ⓒ민음사
Z세대 콘텐츠 이용을 정리한 키워드 ‘PRISM’ Ⓒ한국콘텐츠진흥원

노 맥락, 노 개연성, 막장? 오히려 좋아요

중앙그룹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협력해 Z세대(만 15~29세) 콘텐츠 소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들은 개연성보다 재미를 더 중시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조사 결과를 발간한 <Gen Z 콘텐츠 이용 트렌드>는 Z세대의 콘텐츠 이용 트렌드를 PRISM이라고 정의했는데 마치 빛이 통과될 때 예상하지 못한 여러 색이 나타나는 프리즘처럼, Z세대의 콘텐츠 이용 방식 역시 다채로운 맥락으로 변주된다는 의미다. (키워드별 세부 내용은 위의 이미지에 담겨 있다.) 그중 특기할 점은 스토리의 개연성과 완결성을 중시하는 기성세대와 다르게 Z세대는 재미를 더 우위에 둔다는 점이다.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47%가 영화나 드라마의 막장 전개를 재미있게 본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노(NO) 맥락 트렌드의 대표적 예시로는 특정 용도에 맞춰 설계된 공간이 새로운 의미와 용도로 재해석되어 사용되는 경우 등이 있다. 옷 가게를 카페로 활용하고 목욕탕을 쇼핑센터로 재해석해도 공간의 본래 맥락은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 패션에서도 이런 노(NO) 맥락이 두드러진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잠수교는 최근 런웨이로 활용되어 주요 교통 시설이 아닌 패션 무대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이는 초 단위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가성비보다 중요한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로 서사 중심의 이야기를 시청할 때도 배속과 스킵은 필수이다. Z세대는 기본적으로 1.5배속으로 시청하고 타 세대 대비 시청 비율이 2배속 정도 높다. 지루한 걸 못 참기 때문이다. 뉴스를 볼 때도 길고 내용이 풍부한 뉴스보다 핵심만 간단히 이해하기 쉬운 뉴스를 선호한다.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콘텐츠 부문에서 짧은 시간 내 핵심 정보만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쪼개기 콘텐츠를 선호한다. 이들을 겨냥해 새로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콘텐츠 시장이 바로 스낵 무비와 세로형 숏폼 드라마다.

 

스낵 무비는 장편영화와 다르게 러닝타임이 짧으면서도 예술·독립성의 색채가 짙은 단편 영화와 다르게 대중적이다. 대표적으로는 최근 손석구가 제작 및 주연을 맡은 단편 스릴러 <밤낚시>가 있다. 영화의 총 러닝타임은 12분 59초로, 어두운 밤 전기차 충전소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사건을 다룬다. 왜 하필 전기차냐면 현대자동차에서 아이오닉5 홍보를 위해 제안한 브랜디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런 특성을 십분 살려 자동차 곳곳에 내장된 카메라 시점으로 전개되었다. 독특한 제작 방식으로 야심한 밤, 밤낚시를 하는 남자의 스릴러를 극대화했고 미국 선댄스 영화제 대표 프로그램인 셰프 댄스(ChefDance)에 상영되는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밤낚시>는 단편영화임에도 장편영화처럼 등급 분류 등의 절차를 거쳐 영화관에 정식 상영됐으며 티켓 가격도 1,000원으로 책정해 관객이 부담 없이 관람하도록 했다. 그 결과 국내 누적 관객 수 4만 명을 넘으면서 당초 계획된 상영 기간인 2주를 넘기고 5주까지 연장됐다.

이 흐름을 이어받아 북촌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연속 실종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공포 영화 <4분 44초>도 개봉 예정이다. 총 8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물로, 각 에피소드가 4분 44초이며 전체 상영 시간은 44분이다. 가격 또한 4,000원이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시간이나 금액 면에서 부담 없는 (스낵 무비와 같은) 영화는 관객과 극장의 거리감을 좁힐 것”이라며 “숏폼에 익숙한 시대라는 점도 (흥행에) 작용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세로형 숏폼 드라마는 방송용 드라마와 다르게 회차당 3분 안팎으로 매우 짧다. 다만 회차 분량이 많은데 적게는 30화, 많게는 100화까지 제작된다. 원래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요즘에는 국내에서도 제작이 활발해 유튜브나 전용 플랫폼을 통해 공개된다. 웹툰처럼 첫 5~10화는 무료이지만 이후부터 결제하거나 광고를 시청한 뒤 볼 수 있다. 숏폼 특성상 단기간에 시청자를 끌어당겨야 하기에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풍부한 서사 대신 재미와 압축성으로 승부를 본다.

 

<동생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를 예시로 들어보면 1화 안에 결혼, 불륜, 죽음, 복수 등의 이야기가 숨 가쁘게 전개된다. 그룹의 둘째 딸은 다른 그룹의 후계자와 결혼하지만 그의 불륜으로 고통받다 죽고 둘째 딸의 언니는 동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과거로 회귀한다. 동생의 결혼식 직전으로 되돌아간 언니는 동생의 복수를 위해 후계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러닝타임 단 1분 37초 안에 이 모든 내용이 휘몰아친다. Z세대는 이런 이야기에 거부감이 없다. 이런 트렌드 탓에 스푼랩스에서 운영하는 비글루, 왓챠의 숏챠, 폭스미디어의 탑릴스 등 숏폼 드라마 전용 플랫폼이 출시되고 있다. 유명 배우와 제작진도 참여하면서 점차 주류 시장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배우 이동건과 박하선이 주연을 맡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랑>은 내년 1월 펄스픽에서 공개될 예정이며 <제빵왕 김탁구>와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연출한 이정섭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영화 <밤낚시>와 <4분 44초> 포스터
숏폼 드라마 전용 플랫폼 비글루 홈페이지 Ⓒ비글루

서사의 위기라 단언하기에 일러

길이는 짧아지고 높아진 자극성에 혹자는 서사의 위기가 아니냐며 Z세대와 작금의 세태를 걱정하기도 한다. 기우가 아닐 수 있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도 숙독이 점차 사라지는 세대가 집중력 상실을 맞이해 공감의 결여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와는 상반된 현상들이 Z세대의 콘텐츠 소비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독서는 섹시하다”는 Z세대가 독서를 새로운 힙으로 여기며 고전을 찾아 읽고 이를 소셜 네트워크에 공유하고 오프라인에서 나누는 북클럽 문화에 적극적이란 가디언지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또한 유튜브나 틱톡에서 숏폼만 소비해 걱정된다는 기성세대의 시선에 Z세대는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단순히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더 상호작용이 활발하고 커뮤니티 중심의 콘텐츠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Z세대를 전문으로 다루는 해외 매거진 워크 웨이브즈(Woke Waves Magazine)에 따르면 이들은 콘텐츠를 단순한 소비 거리가 아닌 친구와 공유하고 활발하게 소통하는 하나의 경험으로 취한다고 한다. 기존의 수동적인 콘텐츠 소비 방식과는 대조된다. 과거 국내 드라마 시청률이 40%를 넘나들던 시절, 우리가 다음날 직장과 학교에서 대화를 나누고자 드라마를 본 것처럼 Z세대는 각자의 놀이터에서 자신의 취향과 맞닿아 있는 이들과 긴말하게 소통하고자 유튜브와 틱톡에 열광한다. 그러니 이들이 단순히 자극성만 추구하고 자신만의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혀 산다는 인식은 자칫 오해이자 편견일 수 있다.

Gen Z, 영화 산업의 희망이 될지도

최근에 재밌는 기사가 하나 등장했다. 바로 Z세대가 영화 산업의 새로운 희망의 등대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코로나19 이후 영화관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왕좌를 내주며 서서히 그 위상을 잃어가고 있는데 Z세대의 콘텐츠 소비 습관이 그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한 장소에 가만히 앉아 2시간 이상 정속으로 영화를 보는 방식 자체가 익숙지 않은 Z세대에게 영화관은 일종의 고문 장소와도 같다. 그만큼 도파민이 팡팡 터지지 않는 영화는 극장에서 살아남기 어렵고 개봉 후 조금만 기다리면 OTT 서비스로도 볼 수 있기에 구태여 비싼 돈을 주고 영화관에서 볼 필요가 없어졌다.

 

2022년 말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통해 콘텐츠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지적한 이나다 도요시(Inada Toyoshi)는 Z세대에게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는 고역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영화 <서울의 봄>, <내부자들>을 흥행시킨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 김원국 대표 또한 숏폼의 영향으로 인해 영화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건 못 만든 것보다 지루한 영화인지 아닌지 그 여부라 밝힌 바 있다.

 

이런 점만 놓고 봤을 때 Z세대와 영화는 상극인 것만 같다. 그렇지만 워크 웨이브즈 매거진에서 취재한 바에 따르면 Z세대가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를 저어할지는 몰라도 영화를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특히 X세대나 베이비부머 세대와 비교해 훨씬 높은 수치의 영화 소비를 했으며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를 필수적으로 이용하기에 오히려 이전 세대보다 더 다양한 콘텐츠를 잡식한다고 분석한다. Z세대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제공하는 다양한 자막과 더빙 서비스를 통해 국내 영화뿐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영화를 소비하며 더 이상 모국어에 한정된 콘텐츠 세계에 살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이 2020년 <기생충>으로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을 때, 수상소감 중 1인치의 (언어) 장벽을 넘으면 수많은 다양한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서구권 관객을 독려했다. 그러나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자신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정정했다.

 

1인치 장벽에 관한 이야기를 했지만, 때늦은 소감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미 장벽은 무너지고 있는 상태였고, 유튜브 스트리밍이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이미 모두가 연결돼 있어요. 이제는 외국어 영화가 이런 상을 받는 게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을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 영화감독 봉준호

 

확실히 오늘날 Z세대에게는 해외 영화를 보는 게 낯설지 않다. 특히 한국 영화는 미국의 Z세대에게 드라마, 공포, 스릴러의 요소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결합한 장르 혼합 서사로 유명하며, 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드라마는 LGBTQ+ 관계에 대한 진보적인 묘사로 유명하고, 라틴 아메리카 영화는 종종 정체성과 사회 정의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이러한 다양성은 판에 박힌 할리우드 상업 영화와 대조를 이루며 Z세대에게 새로움으로 다가간다. 어떤 면에서 이들은 전통적인 할리우드 내러티브에 익숙한 부모 세대보다 더 다양한 영화를 감상하며 보다 이질적인 문화에 쉽게 친숙해지고 더 열린 태도를 지닐 수 있다. 넷플릭스는 현지화 전략을 내세우며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이러한 전략이 Z세대에게는 다양한 국제 영화와 드라마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졌다.

한국 영화 최초로 골든글로브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 일부 ⒸDAZED
영화 <레이디 버드> 한 장면 ⒸRex/Shutterstock

 Z세대, 콘텐츠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그럼에도 이런 의문이 가능하다. 모두 영화의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외적인 환경과 관람 형태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냐고. 2시간 이상 진득하니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세대가 과연 깊은 층위의 이야기를 소비할 수 있냐고. 독일의 철학자이자 <피로사회>로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한병철의 신작 <서사의 위기>에서도 이 점이 지적된다. 우리는 서사가 아닌 스토리 중독 사회에 살면서 점차 스마트한 지배 체계에 몸을 맡겨 나만의 생각과 맥락이라 할 수 있는 서사를 잃어버리고 있다. 분명히 Z세대가 오늘날 우리가 유념해야 할 날카로운 사유나 진득한 서사를 회피하는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워크 웨이브즈 같은 기사에서 Z세대는 영화를 볼 때 다양성과 진정성을 중시하며 개인적 성장을 일궈내는 캐릭터들을 사랑한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로 청소년기의 주인공이 자신이 누구인지 사유하며 사랑과 성장통을 겪어나가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레이디 버드>가 있다.

 

애니메이션 영역에서도 전통적인 영웅 서사를 따르는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승리하는 구조가 아닌 역경과 함께 살아가며 실패해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두드러진다. 경쟁이 일상화된 Z세대에게 승리는 오히려 번아웃을 부르는 피곤한 가치가 되기도 한다. 서로 적이 되어 이기기보다 함께 연대하고 보듬어주며 오히려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고 싶은 게 이들의 바람일지 모른다. Z세대의 불안을 정확히 포착해 만든 <인사이드 아웃 2>는 실제로 해당 세대로부터 인생 영화로 불리며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극 중 불안이가 점점 (과도하게) 불안해지며 기쁨이를 감정 본부의 제어판에서 몰아내 주인공 라일리에게 공황을 야기했을 때 성인을 비롯해 많은 관객이 공감하며 단순히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평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영화는 예상 흥행 기대치를 훌쩍 뛰어넘어 국내에서도 879만 명 관객을 모았고 전 세계적으로 누적 수익 16억 달러(한화 약 2조 1300억 원)를 돌파하며 <라이온킹>과 <겨울왕국2>를 넘어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1위에 등극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Z세대는 자신들이 소비하는 스토리에서 표현과 의미를 찾는 세대이다. 다양하고 진정성 있는 서사에 대한 이러한 Z세대의 요구는 콘텐츠와 영화 산업이 진화하도록 추동할 것이며 화면에 나오는 스토리가 이제는 그것을 보는 관객만큼 다양하고 다면적이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천편일률적인 백인 남성 중심의 할리우드 내러티브는 이제 서서히 그 헤게모니를 잃고 다양성과 포괄성을 핵심 가치로 한 콘텐츠 내러티브의 새로운 장이 열릴 수도 있다.

 

콘텐츠만큼 인간의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게 또 있을까. 어떤 세대가 어떤 콘텐츠를 좋아하고 어떻게 관람하고 소비하는지 그 방식을 파고든다는 건 그 세대의 깊은 층위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과 같다. 초기 문화연구에 이바지한 영국의 학자 레이먼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s)는 그의 대표 저서 <기나긴 혁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문화는 특별한 삶의 감각, 즉 특수하고 특징적인 색깔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곧 감정구조이며 그 시대의 문화이다.

 

Z세대의 콘텐츠 문화 소비에 숨은 그들의 색깔과 감정구조는 무엇일까. 그건 단순히 가벼움과 피상성은 아닐 것이다. 다중채널의 시대 속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시류에 휩쓸려 수동적으로 매몰되지 않고자 하는 주체 의식, 전통적인 내러티브에 부화뇌동하지 않는 실험 정신, 글로벌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있어 보다 거부감이 없는 확장성, 그러면서 경쟁이 아닌 함께 상생하고 완벽하지 않은 스스로를 보듬어주고자 위로를 희구하는 마음까지. 기성세대가 안타깝다고 혀를 차는 사이 Z세대는 자신들만의 콘텐츠 소비 문법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